영화 '뜨거운 포옹'(Paris When It Sizzles)은 사브리나 촬영 당시 뜨거운 로맨스로 주목받았던 두 배우 오드리 헵번과 윌리엄 홀든의 10년 만에 재회한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처럼 두 배우의 이번 만남은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합니다.
영화 '뜨거운 포옹'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나리오
영화제작자 알렉산더 메이어헤이머는 술고래이자 바람둥이인 시나리오 작가 리처드 벤슨(윌리엄 홀든)을 고용하고 새 영화를 위한 대본작업을 맡깁니다. 리처드는 대본작업을 핑계로 아파트 하나를 빌리지만 집필은 던져두고 술을 마십니다. 몇 개월이 흘러 영화제작자가 진행상황을 묻는데 그는 뻔뻔스럽게도 집필이 거의 다 마무리되었다고 호언을 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리처드는 자신의 말을 대신 타이핑 해줄 대필 비서인 가브리엘 심슨(오드리 헵번)을 고용합니다.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대본이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채 20주 동안 술을 마신 것을 알고 황당해하는 그녀에게 이틀은 충분한 시간이라며 함께 대본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에펠탑을 훔친 여자'라는 제목만 정해둔 상황에서 아름다운 가브리엘에게 영감을 받은 그는 자신의 상상을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가브리엘은 받아 적습니다. 점점 상황에 몰입한 두 사람은 스스로 대본 안의 주인공에 몰입하고 술까지 나눠마십니다. 취기에 가브리엘의 상상은 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지만 자신에게 심취해 울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리처드는 결국 주도권을 잃은 대본작업을 포기하고 잠이 듭니다. 대본이 없다고 알렉산더에게 전화를 하려던 찰나, 잠옷을 입고 나온 가브리엘의 자태에 넋이 나간 리처드는 새로운 영감을 받아 밤을 새워가며 첩보 액션 멜로물의 대본을 완성합니다. 하룻밤만의 대본에 리처드에게 반해 버린 가브리엘은 시나리오 속에서 그와 함께 온갖 위험하고 황당한 사건들을 겪는 주인공을 연기하고,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내용에 낙담하여 울어버립니다.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화가 난 그는 술이 취한 채로 가브리엘에게 맹공을 퍼붓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브리엘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완성된 대본에 만족한 제작자는 거액을 제시하지만 사라진 가브리엘이 더 소중했던 리처드는 그녀를 만나 둘만의 새로운 영화를 쓰자며 사랑을 고백하고, 두 주인공을 화면에 가득 담은 채 키스와 페이드 아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기대와는 달랐던 혹평과 흥행 참패
1964년 4월 8일, 파라마운트 사는 오드리 헵번과 윌리엄 홀든 주연의 영화 <Paris When It Sizzles>을 개봉합니다. 한국에서는 엉뚱하게도 <뜨거운 포옹>이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홀든과 헵번이 사브리나 이후 10년 만에 다시 결합하여 만든 영화로 뜨거운 기대를 받았습니다. 영문 제목인 Paris When It Sizzles는 콜 포터의 노래 I love Paris의 가사 중 '나는 지글지글 끓는 여름의 파리를 사랑한다'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사브리나 촬영 당시 오드리 헵번은 홀든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을 정도로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지만, 이미 네 아이의 아버지는 홀든은 정관수술 마친 상태였기에 헵번의 사랑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전히 아름다운 헵번과 다시 파트너가 되며 마음이 움직였지만 당시 홀든은 심각한 알코올중독을 앓고 있었습니다. 촬영 내내 그의 알코올중독은 문제가 되어 자주 촬영이 지연되거나 아예 연기되는 등 영화 촬영이 1년 이상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촬영장의 어수선한 상황과 '영화 속의 영화'라는 발상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긴박감 넘치고 흥미로운 로맨스 코미디라는 강점을 연출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서, 당대 두 톱스타 홀든과 헵번이 있었음에도 영화는 각종 매체로부터 차가운 비평을 받고 흥행에 실패합니다. 상영 내내 스크린 안의 배우들은 끊임없이 지글대고 유쾌함을 연기하지만 관객들은 강박적인 코미디와 어수선한 영화에 빠져들지 못합니다. 뉴욕 타임스는 '영화는 마치 부풀어 오르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수플레 같다.'는 평으로 혹평했습니다.
햅번만 남았던 작품
이 영화 다음에 개봉하여 (헵번 개인에겐 큰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영화적으로는 대 성공한 '마이 페어 레이디'가 있어 차라리 다행일 정도로 '뜨거운 포옹'은 흥행과 내용 모든 면에서 실패합니다. 물론, 영화가 시도한 컬트적인 요소와 영화 안의 영화라는 요소는 지금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홀든이 헵번에게 대본의 내용을 설명할 때, 그 대본이 영상을 통해 시각적인 형태를 가지게 되어 리처드와 가브리엘이 자신들 영화 속의 영웅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부분은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요소로서 시대를 앞서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상을 통해 영화가 갖는 제약이 줄어들고 모든 설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생기지만, 그러나 불행히도 이 영화는 1964년의 영화입니다. 상상력을 뒷받침할만한 기술력도, 좋은 대본도(영화 속에서도 그렇지만 실제 집필대본 자체가 치밀하지 못합니다.) 없는 상태에서는 그저 과욕이 심했다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오드리 헵번만큼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에는 오드리 헵번의 목욕신에서 나온 독특한 사과머리 헤어스타일과 그녀가 입었던 여러 의상과 몸짓과 표정만이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라고 권하는 영화 <뜨거운 포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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