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어린 소녀 치히로의 고난 속 순수한 정체성을 다루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다룰 수 있는 모든 경지를 넘어선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내용
익숙하던 동네를 떠나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된 치히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합니다. 길을 잘못 들어 이상한 터널을 통과한 가족은 기묘한 공원에 당도하고 치히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인 없는 음식을 홀린 듯 먹어치운 부모님은 돼지가 되어버립니다. 어두워진 거리를 각종 신과 유령들이 가득 채우고 길을 잃고 몸까지 투명해지던 치히로는 소년 하쿠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을 되찾고 탈출하기 위해 온천여관의 주인 유바바와 계약하여 종업원이 됩니다. 유바바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을 부리며 그들의 이름(기억)을 빼앗는 마녀입니다. 각종 신들이 찾아와 온천을 즐기는 이곳에서 치히로는 모두가 접객을 피하던 오물을 뒤집어쓴 괴물을 도맡아 씻기는데 목욕을 마치고 치료를 끝낸 그는 명성 높은 강의 신이었고 그는 경단 하나를 선물로 줍니다. 한편, 열어둔 문으로 들어온 가오나시는 사금을 만들어내어 종업원들을 유혹하고 환호하는 이들은 삼켜버립니다. 자신에게 친절했던 치히로에게도 사금을 건네지만, 치히로는 유바바의 명을 수행하다가 크게 다친 하쿠에게 경단의 반을 먹이는데 집중하고 오히려 남은 경단 반을 가오나시에게 먹여 그가 삼켰던 모든 것을 토해내게 합니다. 유바바의 언니 제니바를 찾아가는 치히로는 제니바에게 하쿠 대신 용서를 구하고, 건강해진 하쿠는 용의 모습으로 변신하는데 그때 치히로는 하쿠가 어릴 적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강의 신이었음을 기억해 냅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기뻐하던 두 사람은 온천으로 돌아오고 유바바의 시험을 통과하여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뒤를 절대로 돌아보지 말라는 하쿠의 말대로 터널을 통과한 치히로의 앞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서 있었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 최고의 영화
'일본 애니메이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역사를 하나로 집약한 걸작 중의 걸작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국내외 모든 매체로부터 90점 이상의 높은 평점을 받았습니다. 2003년 개봉 이후로 글로벌 영화 사이트인 IMDb에서는 아직까지도 애니메이션 부분 1위를 수성하고 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의 격렬함이 흥행에 성공한 이후 앞으로 지브리의 흥행에는 그 이상의 자극이 필요할 것이라 걱정했던 모두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 듯, 감독은 원래 자신의 주특기를 극상으로 끌어낸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줍니다. 신들의 나라 일본의 여러 복잡한 색채 안에 기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주제의식을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기법으로 절묘하게 배합하고, 자극적인 소재가 아닌 지브리만의 유머와 해학을 담아내어 흥행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아낸 명작이 탄생했습니다. 디즈니가 우리에게 친숙한 각종 서양의 전래동화를 각색하고 디지털 기술을 입혀 주제가에 공을 들여 해마다 상을 하나씩 받아가던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던 것이 미국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상이었는데, 처음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으로 제동을 걸고 동양의 색채를 그려낸 일본 작품으로서 장편상을 받았습니다. 2002 베를린 영화제의 황금곰상 역시 일본 최초의 수상이었습니다. 해적판들이 나돌아 볼 사람은 다 보고 흥행수익은 별 볼 일 없었던 다른 지브리 작품과는 달리, 국내에서도 적시에 개봉하여 200만 명이 관람한 초흥행작이 되었습니다.
꼭 봐야할 애니메이션 1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시선강탈 캐릭터, '가오나시'는 '얼굴이 없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굴이 있었으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좋은 모습을 선망하거나 질투하며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그의 모습을 그려낸 감독은 천재가 맞습니다. 치히로가 겪는 어려운 과정들 역시 단순히 소녀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자아를 잃고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꿋꿋이 지켜낸다는 점에서 더 큰 감동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뒤만 돌면 뭘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려운 상황을 맞아 그 시기를 거치면서 점점 자신의 이름을 잊어간다'라는 설정은 놀랍도록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어 그런 상황을 유도하는 마녀 유바바가 섬찟하기까지 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일부분이 흐릿해진 채 순수했던 어린 시절과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당연한 성장기라고 에둘러 타협하지만, 감독이 그려낸 치히로는 가장 소중한 자신의 이름을 꽉 움켜쥔 채 그 어떤 유혹과도 바꾸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미 변해버린 나,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순수했던 내 모습이기에 아련하지만 그래서 더욱더 치히로와 하쿠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봤던 작품을 두세 번 보지 않는 저로서는 실사영화 중에서는 '노팅힐'을 10번 이상, 그리고 만화영화 중에서는 이 작품을 다섯 번 이상 시청했습니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라는 진부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명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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